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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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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08, 2025 [2025-06-08] 브니엘 칼럼 |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 되는 것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편 105절)    ‘복면가왕’이라는 한국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출연자들이 가면(Mask)을 쓰고 나와 노래를 한 후, 누군지 전혀 모르는 객관적인 상황에서 노래 실력만으로 평가 받는 프로그램입니다. 노래하는 사람의 기본은 ‘외모’ 보다 ‘가창력’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엘리컷시티 주변에도 한국 음식점들이 꽤 많습니다. 요즘은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시설이 좋아진 식당이나 카페들이 예전보다 많아 졌지만, 그래도 음식점의 기본은 ‘맛’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 신앙생활의 기본은 무엇일까요? 과연 우리 믿음의 근본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복음’으로부터 우리의 ‘신앙/믿음’이 생겨남을 고백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 역시 이렇게 선포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자신이 무언가 다 아는 것처럼, 자기의 머리와 경험을 기준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매순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미래를 훤히 들여다보며 자기가 예상한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섭리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에 ‘등불’이 되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인생 가운데 이 등불을 발견하고 경험한 사람들은, 어떤 고난/역경이 와도 절대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도 주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나는 역사’를 체험합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번 한 주간도 말씀의 빛이 나를 비추시고 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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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01, 2025 [2025-06-01] 브니엘 칼럼 |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는 날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레위기 23장 3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찬송가 “즐겁게 안식할 날”(새찬송가 43장)은 영국의 목회자였던 ‘워즈월스(Wordsworth)’에 의해 1862년에 지어졌습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1절-즐겁게 안식할 날 반갑고 좋은 날 내 맘을 편케 하니 즐겁고 기쁜 날 / 2절-이 날에 하늘에서 새 양식 내리네 성회로 모이라고 종소리 울리네 / 3절-이 주일 지킴으로 새 은혜 입어서 영원히 쉬는 곳에 다 올라갑시다”      구약성경 레위기 23장도 안식일(주일)과 각 절기에 지켜야 할 규례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6일 동안은 성실히 일한 뒤, 일곱째 날은 안식하였고, 정해진 절기에도 쉬었습니다. 그런데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엔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성회(거룩한 모임 Holy assembly)’로 모이는 것입니다. 큰 절기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절기의 첫 날과 끝 날에는 반드시 ‘성회’로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께 모였을 때 과연 무엇을 했을까요? 성회라는 이름 자체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다함께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서로 친교를 나누는 날이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거나, 육신의 피로를 푸는 정도의 날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에 다른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더욱 집중하고 이웃과의 화목에 더 신경 쓰라는 하나님의 뜻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즐겁게 안식할 날” 찬송의 감격스러운 고백과 같이, ‘매 주일’이 우리에게 정말 기쁘고 복된 날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주일마다 참 된 기쁨과 평안이 되살아 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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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26, 2025 [2025-05-25] 브니엘 칼럼 | 하나님의 기쁨되기 원합니다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레위기 22장 20절)    생산자인 농민의 입장에서, 약간의 흠이 있는 수확물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되실 것 같습니다. 간혹 교회에서도 보면, 새 것이나 좋은 물건을 교회 물품으로 헌물하시는게 아니라, 본인 집에선 더 이상 쓰지 않는 낡은 물건들을 교회에 사용하라고 가져오시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제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지만, 과연 그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레위기 22장 20절 말씀은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렇습니다. 물건을 주는 이의 입장도 중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을 받는 이의 마음을 꼭 헤아리셔야 합니다. 특히나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이라면, 더욱 그러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힘에 부치도록 부담스럽게 봉헌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분량에 맞는 예물을 준비하고, 어떤 태도로 드리는지 지켜 보실 뿐입니다.     이와는 전혀 반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많은 것을 드렸으니,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며 내게 상을 주시겠지…’ 비싸고 좋은 것을 드린 것이 물론 잘못은 아니지만, 그것을 드리는 ‘마음의 중심’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인지, 혹여나 인간적인 ‘자랑이나 보상심리’로 드린 것은 아닌지, 하나님께서 그 진심을 꽤뚫어 보십니다.    흠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대충 드려선 안 될 것이고, 내가 이만큼 드렸으니 당연히 이만큼 보상하시겠지…라는 심리 역시, 모두 ‘내 위주의 마음’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해야 할 핵심은, 최선을 다 해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고 애쓰는 것입니다.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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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18, 2025 [2025-05-18] 브니엘 칼럼 | PK, MK 보다 GK
    “그들의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들의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레위기 21장 6절)    PK 또는 MK 라는 말이 있습니다. Pastor’s kid (목회자 자녀), Missionary’s kid (선교사 자녀)의 약자입니다. 그런데 이PK, MK들에겐 남들이 잘 모르는 ‘거룩한 부담감’이 존재합니다. 교회에서든 학교에서든, 다른 아이들보다 모범이 되어야 하고, 목사님 / 선교사님이신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면 안된다는 부담감이 늘 존재합니다. 저 또한 PK로 자랐기 때문에, 그 부담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는 PK(목회자 자녀)에 대한 부담에서 훨씬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목회자의 자녀인 것이 부담이기 보다, GK(God’s kid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훨씬 더 기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친구들, 그리고 다른 교인들의 시선 때문에 ‘거룩한 척’ 살아가기 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과 뜻대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PK인 것은 항상 나에게 부담과 불편을 느끼게 했지만, GK인 것은 나를 기쁘고 자유케 했습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21장 6절 말씀 또한 우리에게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진정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 분의 자녀됨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부담감’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진정 아버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는 ‘GK(하나님의 자녀)’ 맞습니까?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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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11, 2025 [2025-05-11] 브니엘 칼럼 | 신앙생활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라”(구약성경 레위기 20장 26절)    신념이 강하고 목적의식이 뚜렷한 사람들은 어떤 목표가 정해지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그러나 목표 지향적 특징이 강한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 나면 (혹은 반대로 그 목표가 실패하면), 삶의 에너지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최고의 대학에 갔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이 어떠한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설령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높은 연봉의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그 이후에 살아가게 될 인생의 내용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큰 은혜로 이집트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새롭게 출발합니다. 구약성경 “레위기”는 당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받은 ‘하나님의 법과 규칙들’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 중 레위기 20장 22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가나안)이 너희를 토해내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끝내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힘든 광야생활을 마치고 살기 좋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최종 목적/영원한 목표’는 바로 ‘거룩한 삶’이었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20:26) 우리는 진정 ‘거룩한 삶’에 목적을 두고 계십니까?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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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04, 2025 [2025-05-04] 브니엘 칼럼 |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레위기 16장 30절)    이스라엘 달력으로 (음력) 7월 10일이 되면, 이 날은 이스라엘의 ‘대속죄일’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민족이 이 날 하루 온전히 금식하며 모든 죄를 회개하는 국가적 공휴일이었습니다. 또한 ‘대속죄일’은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The most holy place: 성막/성전 가장 안쪽의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던 장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대속죄일’을 지내며 꼭 지켜야 하는 규칙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 첫번째가 레위기 16장 29절의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근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정말 가슴 아파하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날에는 모두가 금식하고 금욕하며 낡은 옷을 입고(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하지 않고), 스스로 겸손히 낮춰야 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레 16:29) 했습니다. 물론 다른 일들을 하지 않으면서, 오직 속죄하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뜻도 있지만, 이 말씀엔 좀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즉 ‘속죄와 용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결정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일깨워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기는, 진심으로 애통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이 임하실 줄 믿습니다(마 5:4). 그러므로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들은, ‘제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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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27, 2025 [2025-04-27] 브니엘 칼럼 | 거룩함에 대한 긴장감
    “너희는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그들 가운데에 있는 내 성막을 그들이 더럽히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서 죽지 않도록 할지니라”(레위기 15장 31절)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제사/예배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답게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레위기에 등장하는 모든 법조항의 근본 취지는 ‘거룩함(Holiness)’에 있습니다. 또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4)는 말씀에 하나님의 간절한 바램이 잘 담겨 있습니다.      레위기 15장은 모든 ‘유출병(피나 진액이 몸 안으로부터 밖으로 나오는 병)’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특별히 그 결론과도 같은31절을 보면, “그들을 부정에서 떠나게 하여, 성막을 더럽히지 않게 하고, 그들이 부정한 중에 죽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즉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상태, 부정한 상태로 제사/예배를 드리거나, 죄 가운데 하나님을 뵙게 되면, 죽을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셨습니다.        이 레위기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일찍이 깨달았던 사도 베드로는, 후에 이런 글을 남깁니다.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그 분의 말씀 속에 담긴 간절한 바램을 깊이 깨달은 사람들은, 그래서 ‘거룩해지기’를 결단합니다.       그렇습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거룩하지 않은 부정한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예배와 삶은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로 인해, 우리는 구약시대처럼 ‘두렵고 떨린 제사’를 드리지는 않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대한 긴장감’이 우리 가운데 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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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20, 2025 [2025-04-20] 브니엘 칼럼 | 예수님의 부활, 확고히 믿으십니까?
    신약성경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마무리 된 후, 3일째 되던 날 이른 아침의 일을 묘사합니다. 3명의 여인이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갑니다. 손에는 시신에 바를 향품(Perfume)이 들려 있었고, 무덤을 막은 큰 돌문을 어떻게 치워야 하나 걱정이었습니다.      사실 이 세 여인이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 가거나 숨어 있지 않고, 용기를 내어 무덤에 찾아간 것만으로도 칭찬 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Faith)은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그 분의 절대평가’ 임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아쉽게도,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들고 갔다는 점과, 무덤 앞의 큰 돌문을 어떻게 옮길까 고민했던 것은, 곧 주님의 ‘부활’을 실제로는 믿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진짜 믿음의 여부는 실제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이 그토록 가르쳐 주셨던 ‘부활’을 정말 신뢰했다면, 시체에 바를 향품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무덤을 막은 큰 돌문도 염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고, 돌문도 이미 활짝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확고히 믿고 계십니까? 매우 안타깝게도 이 세 여인들 뿐만 아니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리고 나머지 모든 제자들도… 처음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분의 ‘말씀(Word)과 영(Spirit)’이 그들 마음에 충만히 임했을 때, 의심하던 제자들은 오히려 ‘부활의 확고한 증인’이 되었고, 그 생명 다할 때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갑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2025년 부활절 기간에도, ‘부활의 성경적 근거들’을 꼭 읽어 보시길 권면드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누가복음 24장, 요나 1-4장, 이사야 53장, 시편 16편과 22편, 요한복음 20-21장” 말씀을 통해, ‘부활의 생명력’이 회복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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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13, 2025 [2025-04-13] 브니엘 칼럼 | 여호와의 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위기 10장 2절)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전달 받은 ‘제사의 종류와 방법’들을 레위기에서만 9장에 걸쳐 자세히 설명한 후, 드디어 10장에서는 공식적인 첫 제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첫 제사를 드리던 도중,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제사장이었던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 중에 죽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이 갑자기 죽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사 중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제단 위의 불을 가져다가 향을 피워야 했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절차를 지키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편리한 방법으로 불을 피워 분향했던 것입니다(레10:1). 그러자 여호와의 큰 불이 그들을 삼켰고, 제사 도중에 제사장들이 죽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레10:2).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만약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레위기 10장”을 읽는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기 쉽습니다. ‘제사를 드리다가 불을 잘못 피울 수도 있지,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 것은 너무 이해가 안되는 일인데?’라고 말이죠…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정말 해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크리스찬에게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주의 깊게 듣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경청해야,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주님의 말씀을 흘려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계속 행동한다면, 하나님이 도저히 봐주실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고 살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시길 축복합니다.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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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06, 2025 [2025-04-06] 브니엘 칼럼 |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는 삶
    “모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레위기 9장 6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영광 드린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합니다. 큰 상을 받거나,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주로 많이 쓰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실까요?      모세는 레위기 9장 6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모세는 레위기 9장까지 줄곧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제사법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을 임명하는 절차를 마친 후, 드디어 첫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기 직전에, 레위기 9장 6절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아홉 장 가까이 심혈을 기울여 자세히 설명했던 제사법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면,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나리라 힘주어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먼저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신실한 제사/예배를 온전히 드리면, ‘여호와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영광만 바란 채, 오히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에는 소홀하지 않았는지, 우리의 믿음을 잘 되돌아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마르다’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동생이 죽자, ‘동생 나사로’를 다시 살리겠다고 말씀하실 때, 마르다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무덤 앞을 막은 돌을 좀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실 때, 전혀 따르지 않았습니다. 행동하지 못했던 이유는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깨우는 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마르다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요 11:40)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든 마르다는 무덤 앞의 돌들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때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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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30, 2025 [2025-03-30] 브니엘 칼럼 | 리더의 조건
    “모세가 회중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이러하니라 하고(레 8:5)...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레 8:35)”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기였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Moses)’라는 지도자를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수 백 년 동안 이집트(애굽)의 노예로 지내는 동안, 자칫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출애굽(Exodus)”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십니다.     그런데 이 ‘모세’라는 사람에 대해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내용을 잘 읽어보시면, 그가 리더로서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모세 스스로도 고백하기를, 자신은 출애굽이라는 큰 과업을 이루기엔 부족한 사람임을 여러 차례 고백합니다. 특히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인 ‘언변의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만 봤을 때, 모세는 출애굽을 위한 적합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사람의 투표를 통해 리더를 선출했다면, 연설과 토론에 약한 모세는 리더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모세를 큰 위기 가운데 리더로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모세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구약성경 레위기 8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레위기 8장에서만 무려 8번을 강조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그대로를 가감 없이 전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잘 나고 똑똑하고 언변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전하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을 간절히 찾으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면에서 정말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과연 ‘하나님이 간절히 찾으시는 리더의 기준/조건’에 합당하십니까?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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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23, 2025 [2025-03-23] 브니엘 칼럼 | 내 마음의 제단 - 불을 꺼뜨리지 마라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레위기 6:13)    과거 로마시대의 역사 자료들을 보면, 유대 지역으로 발령 받은 로마 총독과 공무원들, 그리고 파견 군인들이 유대 지역 근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수도인 로마를 기준으로 볼 때, 유대 지역은 거리상으로도 한참 떨어져 있는 변방 지역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주목 받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또한 까다로운 유대인들을 사고 없이 관리하는 것도 어려운 점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 외에도, 유대 지역 근무를 꺼려하는 또 다른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매일 드려지는 제사가 로마 사람들에게는 매우 어색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엄숙한 분위기도 적응이 안됐지만, 동물을 태우는 냄새와 연기 때문에 매우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로마총독들은 도시 환경이 더 좋은 다른 지역에 가서 지내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필요한 날에만 제사를 드리지 않고) 매일 끊임 없는 제사가 계속 이어졌을까요? 바로 그 근거가 되는 중요한 구절이 바로 “레위기 6장 13절” 말씀입니다.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물론 우리들은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구약시대와 같은 동물 제사를 드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꺼뜨리지 말아야 할 제단의 불’은 과연 무슨 의미겠습니까? 내 마음의 제단에서 항상 꺼지지 않고 타올라야 할 ‘성령의 불 / 기도의 불 / 예배의 불’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필요할 때만 제단의 불을 피우라’ 하지 않으시고, “끊임 없이 제단 위에 불을 피워 꺼지지 않게 하라”(레 6:13)고 말씀하셨는지…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을 깊이 되돌아 볼 수 있는 말씀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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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16, 2025 [2025-03-16] 브니엘 칼럼 | 진정한 회개, 뻔뻔한 회개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구약성경 레위기 6장 5절)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회개’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백한 죄를 짓고도,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게만 ‘회개’하지, 피해를 본 사람(피해 당사자)에게는 진심 어린 사과나 배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인의 잘못된 회개를 공개적으로 꼬집은 영화가 바로 “밀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회개’란, 결코 하나님께만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잘 묘사하는 곳이 바로 레위기 6장의 “속건제(Guilt Offering)” 장면입니다. 실수든 고의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사과와 더불어 물건을 온전히 보상할 뿐 아니라, 피해액의 5분의 1을 더 보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는 따로 ‘속건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구약시대’에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그 내용과 취지는 이어집니다. 유대인들의 세금을 착취하기로 유명했던 세리 ‘삭개오(누가복음 19장)’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달았을 때, 그는 피해액의 4배를 사람들에게 보상하고, 전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회개의 마음과 보상의 액수가 더 커졌습니다.      영화 ‘밀양’에 나왔던 ‘살인자/유괴범의 회개’는 분명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이유는, 여전히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적인 회개’를 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지탄 받을 ‘뻔뻔한 회개’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요? 레위기 6장 말씀의 온전한 ‘속건제’를 통해, 크리스찬의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올바로 정립될 수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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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09, 2025 [2025-03-09] 브니엘 칼럼 | 자복 – 스스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다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레위기 5장 5절)    하나님께서 ‘죄(Sin)’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레위기의 제사 장면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은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 그 죄를 온전히 분리해내려면, 정말 어렵고 복잡한 제사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죄 문제’에 대해 민감하실까요?       좋은 아버지(Good father)라면, 자녀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관계가 멀어지다 못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다면, 정말 가슴이 아픈 일이겠죠.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바로 ‘죄(Sin)’입니다. 우리에게는 분명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거나 풍성케 할 수 있는 방법들이 허락되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궁극적으론 하나님과 나를 단절케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사탄(Satan)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나에게 ‘죄’를 집어 넣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우리에게 여전히 ‘소망’이 남아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 지은 나를 그냥 방치해 두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다시 정결케 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제사’였고, 지금과 같은 신약시대에는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내가 ‘죄’로부터 정결케 되어, 진심을 다 해 예배를 드린다는 의미는, 결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하나님께 다시 영광을 드리는 일이고, 나 자신은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레위기 5장 5절 말씀을 마음에 꼭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에 허물이 발견되었을 때, 그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복(스스로 죄를 자백/참회)’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우리의 삶이 죄 짓는 도구로 쓰이기 보다, 오히려 죄를 깨닫고 자복하는 삶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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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02, 2025 [2025-03-02] 브니엘 칼럼 | 고운 가루의 모습으로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레위기2장 1절)    구약시대의 제사는 동물을 제물로 드리든 곡식을 드리든, 엄격한 절차와 세심한 정성이 뒤따랐습니다. 내 죄를 대신해 동물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려야 했고, 그 살과 가죽, 뼈와 기름 등은 규칙대로 철저히 분리하고 제거해서 불로 태웠습니다. 곡식의 경우에도, 추수한 알갱이 그대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흠 없는 곡물을 선별하여 최대한 곱게 빻아 가루를 만들고, 그 위에 기름과 향유를 부어 향기롭게 태워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제사는 최선을 다 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이 목적이었고, 철저히 회개하는 심정으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의 각 종 제사에 대한 규칙과 내용을 묵상하면서 계속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철저한 제사의 장면들을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알려주시는 이유가 뭘까… 간절히 바라기는, 레위기의 제사 장면들이, 과거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었던 옛날 이야기 정도로만 여겨지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에게 이미 들어온 죄악들을 하나님 앞에서 제거하고 용서 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철저한 회개/참회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구나…’ 깊이 깨달을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또한 오늘 읽으신 레위기 2장 1절에서는 곡식을 곱게 빻아 가루로 태워드리는 ‘소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고운 가루’를 만들어, 올리브 기름과 유향을 섞어 향기롭게 드리는 제사… 우리의 예배와 삶이 이런 ‘소제’와 같은 곱고 향기로운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뾰족한 부분들은 곱게 다듬고, 하나님 앞에 내 예배와 삶을 드릴 때는 고운 가루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향기’를 더하여 드릴 수 있는 그런 예배자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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