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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ly 07, 2024 [2024-07-07] 브니엘 칼럼 |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장 22절)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론 그것이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행동’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씀대로 행하는지’를 보시고, 그의 ‘믿음’이 진짜인지 확인하십니다.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는 사람은 그 분의 말씀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주 암송구절도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절) 진실된 ‘믿음’을 가졌는지는 반드시 ‘행동’으로 증명되고,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곧바로 이어지는 야고보서 1장 본문에서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의 2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1) 거울로 자신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도 씻지 않습니다(23-24절). (2) 스스로 자기 믿음이 좋은 줄 착각하며, 말은 많이 하지만 행동하지는 않습니다(26절).    하나님께서는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참 된 경건’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닌, “듣고 실천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5절). 구체적으로는, (1) 자신의 신앙이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치열하게 지키는 것과 (2) 어려움 당한 이웃들을 실제로 돌보는 실천이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신앙’입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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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30, 2024 [2024-06-30] 브니엘 칼럼 |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장 22절)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때론 그것이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행동’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씀대로 행동하는지’를 보시고, 그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신뢰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주 암송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22절) 진실된 ‘믿음’을 가졌는지는 반드시 ‘행동’으로 증명되고,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믿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곧바로 이어지는 야고보서 본문에서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의 2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1) 거울로 자기 얼굴이 더러운 것을 보고도 씻지 않습니다(23-24절). (2) 스스로 자기 믿음이 좋은 줄 착각하여, 말이 많지만 행동하진 않습니다(26절).    하나님께서는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에서 ‘참 된 경건’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각인 시켜 주십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닌, “듣고 실천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25절). 구체적으로는, (1) 자신의 신앙이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치열하게 지켜내는 일과 (2) 어려움 당한 이웃들을 실제로 돌보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믿음’입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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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24, 2024 [2024-06-23] 브니엘 칼럼 | 심고 거두는 인생, 나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장 7절)   아기가 태어나 자라면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것을 보면서, 놀라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사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콩 심은데서 콩이 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모님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친 적은 없겠지만, 실상은 부모 세대들도 거짓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거짓된 마음을 품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이끌고 계신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암송구절은 우리에게 이런 당부의 말씀을 하십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갈6:7)       우리가 한 번 거짓말을 하면, 3번의 죄를 동시에 짓게 됩니다. 일명 ‘3중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선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거짓말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기만(Deceit)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심고 거두며 살아야 합니까? 갈라디아서 6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참 된 성도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이, ‘육체와 관련된 것을 심으면, 그것은 반드시 썩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썩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위한 삶을 살면, 반드시 영원한 것을 얻습니다.’  크리스찬의 삶의 목적을 영원히 썩지 않을 것에 두고 살아가는 이유는, 주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이고, 성도들은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굳건히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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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17, 2024 [2024-06-16] 브니엘 칼럼 | 누구의 종이 되어 살 것인가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였더니”(갈라디아서 4:8)    지금 회상해보면, 과거에 내가 ‘참 어린 생각과 행동이 많았구나…’ 종종 깨닫게 됩니다. 특히 초등학교/중학교 때 숙제로 썼던 일기장을 다시 읽어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오는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과거 모습들을 이렇게 비유로 표현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하였더니…”(갈 4:3)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이전에 가졌던 어리석인 모습을 가리켜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서 종 노릇했다”고 표현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없었던 내 인생’이 얼마나 부족했었는지, ‘마치 초등학생 시절 처럼 유치했었는지…’ 마음 깊이 깨달으셨습니까?            바울은 ‘예수님이 없는 어떤 종교나 신념도 자기자신을 온전히 구원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종교나 신념에 빠져들수록, 자기자신을 더욱 착각하게 만들고 더욱 악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8절 말씀을 통해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선포합니다.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였다…” 누구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대로 열심히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자기도 모르게 그것에 얽매여 “종 노릇”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자기자신만의 신념과 인간의 본성이 서로 만나면, 헛된 것에 종 노릇하며 교만하게 살아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영적인 ‘초딩(초등학교) 시절’을 과감히 벗어나셨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아들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신념을 따라 ‘종노릇’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딸 되어, 의미 있고 소망 찬 인생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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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09, 2024 [2024-06-09] 브니엘 칼럼 |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끝마치는 삶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장 3절)   모든 일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용두사미’, 즉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으로 끝나선 안됩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기꾼들은 ‘용두사미’ 전술을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뭔가 있어 보이게 사람들을 현혹했다가, 결국 끝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용두사미가 되어선 안됩니다. 예수님 믿어 보겠다고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결국 예전의 믿음 없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됩니다.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에서도 이와 같은 엄중한 경고를 남깁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주변에 ‘나는 신앙생활을 꽤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자칫 착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자신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봐서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성도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중요한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이 오늘 엄중히 말하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의미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령과 함께 시작했으면, 마지막까지 성령과 함께 끝마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복음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성령의 역사’로 크리스찬이 되었다면, 이어지는 성도의 삶에서도 ‘성령과 동행’해야 하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령과 함께’ 끝마쳐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내가 노력해서 신앙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과 함께 동행하시다가, 마지막 순간에도 성령으로 끝마치는 신앙의 여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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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June 03, 2024 [2024-06-02] 브니엘 칼럼 |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으로 끝마치는 성도의 삶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라디아서 3장 3절)   모든 일은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용두사미’, 즉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으로 끝나선 안됩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기꾼들은 ‘용두사미’ 전술을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뭔가 있어 보이게 사람들을 현혹했다가, 결국 끝에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용두사미가 되어선 안됩니다. 예수님 믿어 보겠다고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결국 예전의 믿음 없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됩니다. 이번주 암송구절 말씀에서도 이와 같은 엄중한 경고를 남깁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주변에 ‘나는 신앙생활을 꽤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 자칫 착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자신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물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봐서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걸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성도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원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이 오늘 엄중히 선포하는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겠느냐”는 말씀의 의미는,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마지막까지 성령으로 끝마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복음의 말씀’이 깨달아지는 ‘성령의 역사와 감동’으로 크리스찬이 되었다면, 그 후로 계속되는 성도의 삶에서도 성령과 동행해야 하며,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령과 함께 끝마쳐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칼럼을 읽으시는 모든 교우들이 ‘성령으로 시작하여, 성령과 함께 동행하시다가, 마지막 순간에도 성령으로 끝마치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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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26, 2024 [2024-05-26] 브니엘 칼럼 | 믿음의 사각지대(Blind Spot)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갈라디아서 2장 10절)    사각지대(Blind spot)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실내 거울(Room mirror)과 측면 거울(Side mirror)을 통해서도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운전하면서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차선을 변경하거나 후진을 할 때, 꼭 몸을 돌려 사각지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중요한 동기는, 당시 할례파들이 전하고 다니는 ‘행위’로써 구원받는다는 “잘못된/다른 복음”을 방지하고,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다시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올바른 복음”으로 돌이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주 암송구절인 갈라디아서 2장 10절은 그저 스쳐 지나가기 쉬운 구절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바울의 선교팀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선교보고와 회의를 마친 후,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시리아)으로 출발하려 할 때,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도들이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각 지역에서 선교를 하면서) 가난한 자들 돌보는 것을 꼭 잊지 말아 주시오”(갈 2:10)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범할 수 있는 오류/실수가 한 가지 있습니다. 오직 ‘믿음’만을 강조한 나머지, 영적/육적으로 가난한 자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보는 ‘행위’가 자칫 소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사도들과 바울의 선교팀도 계속 강조한 것처럼, 사람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이 변함없는 성경적 진리입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신앙’이 정말 있다면, 동시에 내 주변의 어려움 당하는 이웃들을 돌보고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각지대(Blind spot)가 생기지 않도록, 오늘도 내 눈과 몸을 돌려 주위를 살피시고 돌보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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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19, 2024 [2024-05-19] 브니엘 칼럼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전도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서 1장 10절)   고객서비스(Customer Serv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왠만한 마트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가게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고객을 더욱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오늘 암송구절 말씀에서는 이런 고객서비스와는 정반대되는 말씀을 합니다. “선교/전도의 목적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있지 않다(10절)”고 선포합니다. 고객 중심의 서비스(Service for Customer)가 아닌, 하나님 중심의 서비스(Service for God)를 단호히 선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선교팀에 의해, 갈라디아 지역에 ‘예수의 복음’이 처음 전해졌고, 교회도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갈라디아 선교를 마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례파’라 불리는 사람들이 갈라디아로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 -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할례’를 포함한 구약성경의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큰 차이가 없는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전혀 “다른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진짜 복음’ 외에, 다른 어떤 것을 교묘히 더하는/혼합하는 것에 우리는 단호히 대처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는 말은, 예수님 만으로는 안된다는 말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다른 복음/가짜 복음’을 하나님께서 절대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고객 중심의 서비스는… 사실상 전도나 선교라기 보다 비즈니스(Business)에 가깝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자기 중심/사람 중심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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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12, 2024 [2024-05-12] 브니엘 칼럼 | 아는 것(To know)에서 사는 것(To live)으로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1장 9절)   목숨 걸고 ‘예수님의 복음’을 아시아와 유럽에 전했던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이 반대하는 ‘예수’를 전했다는 이유로 결국 체포되었고,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졌던 바울은 항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므로, 결국 대법원이 있는 수도 로마까지 올라가 최종 재판을 받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수감 중이었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썼던 편지들 중 하나입니다. 수신자는 소아시아(현재 터키) 지역의 “골로새”라는 도시에 있는 크리스챤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초를 겪던 와중에도,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고 있다(9절)” 옥중에서도 그가 선교했던 교회와 교인들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해 ‘2가지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기를(9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 뜻을 이루는게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신령한 지혜” 곧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게(10절)”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신령한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면,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아는 것이 실제 삶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10절)”과 “모든 일에 선한 열매를 맺는 것(10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행함’을 통해 실제 삶에서 열매가 나타나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뜬구름 잡는 사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살아 역사하는 ‘생명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아는 것’에 머물지 마시고, 열매 맺고 계속 성장하는 삶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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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y 06, 2024 [2024-05-05] 브니엘 칼럼 | 아는 것(To know)’에서 ‘사는 것(To live)’으로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1장 9절)   목숨 걸고 ‘예수님의 복음’을 아시아와 유럽에 전했던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이 반대하는 ‘예수’를 전했다는 이유로 결국 체포되었고,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졌던 바울은 항소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으므로, 결국 대법원이 있는 수도 로마까지 올라가 최종 재판을 받게 됩니다.    “골로새서”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수감 중이었던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썼던 편지들 중 하나입니다. 수신자는 소아시아(현재 터키) 지역의 “골로새”라는 도시에 있는 크리스챤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고초를 겪던 와중에도,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고 있다(9절)” 옥중에서도 그가 선교했던 교회와 교인들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교회를 위해 ‘2가지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기를(9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내 뜻을 이루는게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신령한 지혜” 곧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라게(10절)”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신령한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면, 거기에 머무르지 말고, ‘아는 것이 실제 삶에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주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10절)”과 “모든 일에 선한 열매를 맺는 것(10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행함’을 통해 실제 삶에서 열매가 나타나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뜬구름 잡는 사상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살아 역사하는 ‘생명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아는 것’에 머물지 마시고, 열매 맺고 계속 성장하는 삶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 윤병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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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30, 2024 [2024-04-28] 브니엘 칼럼 | 중생(Born again)의 씻음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5)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아내/남편과 결혼하시겠습니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가끔씩 재미삼아 들어보는 질문들입니다. 마음 한 켠에 다시 태어날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현재의 마음이나 만족도를 확인하는 질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성경을 통해 다시 태어남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Born again)”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몸은 예전과 다를 바 없지만, 마음/영혼은 다시 태어난 것처럼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중생”입니다.      오늘 암송구절 말씀도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디도서 3:5)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을 때 일어나는 중요한 영적인 현상으로서 “중생(Born again)”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냥 “중생”이라고 하지 않고, “중생의 씻음”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영혼이 새로 태어나려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씻음(Cleansing)”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가 쓴 편지에서 여러 번 강조합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는 더러운 마음을 씻을 수 없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찬송가 250장과 259장의 가사를 지은 호프만(Hoffman)도, 바울이 말하는 이런 “중생의 씻음”에 대해 깊이 깨닫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 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찬송259장) 여러분은 예수님의 보혈로 마음을 씻으셨습니까? 이번 한 주도 “중생(Born again)의 씻음”을 깨닫고 경험하는 시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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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21, 2024 [2024.04.21] 브니엘 칼럼 | 부패(Corruption) VS 본(Example)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라” (디도서 2:7-8)      교회나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비판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말은 그럴듯한데 그에 따르는 행동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아들처럼 아끼는 제자 디도에게 계속해서 이렇게 당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 받지 않게 하라(2:5)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라(2:8)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2:15)”              사실 우리와 신앙이 다른 사람들은, 크리스찬들 안에 있는 믿음을 들여다 볼 ‘영적 시력(Spiritual sight)’이 아직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와서 믿어보라”고 말하기 전에, 믿음에 따르는 열매, 곧 선한 행동을 함께 보여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만도 못하게 행동한다”는 말은 절대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도에게 구체적으로 이렇게 당부합니다.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에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을 보이라...(2:7)” 모든 일에 디도 자신이 먼저 선한 본(Example)이 되어 달라는 부탁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의 교훈이 부패하지 않게 하라”는 중요한 말씀을 남깁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인의 입을 통해 전달 되는 거룩한 말씀들이 “부패한 말 / 썩은 말”이 되지 않으려면, ‘그와 같은 본을 보이고 선한 행동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말이 ‘죽은 말/부패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믿음 - 소망 - 사랑’의 거룩한 말씀 그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바울의 애절한 부탁처럼… 그 거룩한 말씀들이 우리 때문에 ‘부패하고 썩은 말씀’이 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크리스찬’이 될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 중 다만 한 가지라도, ‘살아 움직이는 본(Example)’이 나타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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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14, 2024 [2024.04.14] 브니엘 칼럼 | Again : Small thing, Big thing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디도서 1장 10절)   Don’t sweat the small th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소한 일인 줄 모른 채, 마치 큰 일인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크게 다툴 일은 아니었는데…’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큰 일(Big thing)인지, 아니면 사소한 일(Small thing)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항상 필요합니다.   2000년 전 중동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할례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목숨 걸고 주장했던 것은, 하나님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았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의 선교팀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라고 전도하면, 할례파들은 바울 선교팀 뒤를 따라다니며, 예수도 좋지만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지금은 신학적으로 다 정리가 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할례파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도 바울은 아끼던 제자 디도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이런 자들(할례파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디도서 1:11) 하나님의 뜻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구약성경의 할례와 제사를 갱신하는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왜 필요했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할례’가 small thing이 되고, 예수로 말미암는 ‘마음의 할례’가 Big thing이 되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어떤 것에 목숨을 걸고 사십니까? 생명을 걸만한 중요한 일에 열정을 다하고 계십니까? 이번 한 주도 나의 인격과 신앙에 예수의 흔적이 남는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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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April 07, 2024 [2024.04.07] 브니엘 칼럼 | Small thing, Big thing
    “불순종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할례파 가운데 특히 그러하니” (디도서 1장 10절)   Don’t sweat the small th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사소한 일인 줄 모른 채, 마치 큰 일인 것처럼 목숨 걸고 싸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크게 다툴 일은 아니었는데…’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목숨 걸고 싸워야 할 큰 일(Big thing)인지, 아니면 사소한 일(Small thing)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항상 필요합니다.   2000년 전 중동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할례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목숨 걸고 주장했던 것은, 하나님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았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의 선교팀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라고 전도하면, 할례파들은 바울 선교팀 뒤를 따라다니며, 예수도 좋지만 ‘할례를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지금은 신학적으로 다 정리가 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할례파 문제가 굉장히 심각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사도 바울은 아끼던 제자 디도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이런 자들(할례파들)이 더러운 이득을 취하려고 마땅하지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는도다”(디도서 1:11) 하나님의 뜻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구약성경의 할례와 제사를 갱신하는 ‘예수의 십자가 복음’이 왜 필요했는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할례’가 small thing이 되고, 예수로 말미암는 ‘마음의 할례’가 Big thing이 되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어떤 것에 목숨을 걸고 사십니까? 생명을 걸만한 중요한 일에 열정을 다하고 계십니까? 이번 한 주도 나의 인격과 신앙에 예수의 흔적이 남는 인생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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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릴랜드브니엘교회March 31, 2024 [2024.03.31] 브니엘 칼럼 | 부활의 산 증인들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마가복음 16장 7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자세히 기록해 놓은 마가복음 16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있은 후 3일째 되던 날 새벽의 일로 시작됩니다. 3명의 여인이 용기를 내서 예수님의 무덤으로 올라갑니다. 손에는 시신에 바를 향품(Perfume)이 들려 있었고, 모두 무덤 앞의 큰 돌을 어떻게 치울까 걱정이었습니다.     사실 이 여인들이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을 갔거나, 예수님의 시신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고, 무덤에 용기 있게 찾아간 것만으로도 ‘훌륭한 신앙’이라 칭찬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신앙(Faith)’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지의 여부가 중요함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들고 갔다는 것과 무덤 앞의 큰 돌문을 어떻게 치울까 고민했다는 것은, 곧 주님의 ‘부활’을 실제로는 믿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말로 또는 머리로는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진짜 믿음의 여부는 실제 행동에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정말 신뢰했다면, 시체에 바를 향품은 필요 없었을 것이고,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살아나셨고, 돌문도 이미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의 부활’을 확고히 믿으십니까?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인생 가운데 실제로 경험하고 계십니까? 안타깝게도 이 3명의 여인들 뿐만 아니라,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도… 처음엔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그 분의 말씀과 영(Spirit)이 그들 마음 가운데 충만히 임했을 때, 의심 많던 제자들은 ‘부활의 확고한 증인’이 됩니다. 그 생명 다할 때까지 ‘예수를 전하는 자’로 살아갑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하신 주님의 산 증인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 메릴랜드 브니엘교회 윤병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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